일터의 안전, 중앙정부 손놓고 지자체 '힘준다'
노동계, 관련사안 듣지 못해 '반발'…부작용 우려감 증폭
김민정
sh1024h@mdtoday.co.kr | 2010-03-26 21:38:24
근로자 안전을 관리, 감독해왔던 노동부의 주요 기능이 지자체로 이양돼 노동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각지대의 근로자들은 이제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게 됐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제18차 회의를 거쳐 지난달 10일 지자체로 기능 이양을 결정했으며 이 사안은 이미 11일 대통령의 재가를 통해 확정됐다. 하지만 급박한 진행상황 속에서 산업안전보건 관련 단체들은 이번 안건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능 가운데 지방으로 이양된 목록은 노동부 14개 기능, 57개 사무이며 ▲작업환경 측정대행 등의 기능 2개 사무 ▲안전 인증 등에 관한 기능 7개 사무 ▲안전보건기능의 5개 사무 ▲사업주 등의 감독기능 6개 사무 ▲유해물질 제조, 허가기능 2개 사무 ▲유해인자 관리기능 2개 사무 ▲지도사의 등록기능 1개 사무 등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핵심사안이다.
특히 ▲산업안전 관리 능력이 없는 지자체가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느냐 ▲사업체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인 지자체가 사업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느냐가 문제로 지적됐다. 논의 과정상 노동계가 제외됐다는 것도 문제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26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산업안전과 관련된 단체들과 함께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 단체들은 대한산업보건협회, 한국특수건강진단협회, 대한산업안전협회, 을지대학교 보건산업안전학 갈원모 교수,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성천 의원(한나라당) 관계자, 한국작업환경관리협회 등이다.
산업안전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인 일로 해당 단체들은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 관계자들 또한 이번 사안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데 불만을 제기했다.
대한산업보건협회 김윤철 사업운영이사는 “대통령 재가까지 난 상황에서 이유, 결과, 대책이 논의돼야 할 것이며 졸속 추진은 절대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한국노총 산업환경연구소 조기홍 국장은 “왜 지방으로 이양됐는지 공문을 보낸 상태이며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들을 때까지 선전, 캠페인 등을 벌일 것”이라며 “노동부에도 항의 방문을 해 왜 이번 사안에 대해 전혀 언질을 주지 않았는지 따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안은 ‘안전보건기능’, ‘유해인자 관리기능’ 등이다. 안전보건 기능에는 역학조사, 안전․보건진단이 포함돼 있어 전문적인 인력이 필수적이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관은 관련 기술을 수년간 축척해왔다. 세계적으로도 산업안전보건은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추세다.
8개 부처 가운데 노동부의 지방이양비율이 높은 것도 문제다. 기획재정부 2개사무, 농림수산식품부 1개사무, 교육과학기술부 2개사무, 보건복지가족부 2개사무, 국토해양부 7개사무, 공정거래위원회 2개사무에 불과하지만 노동부는 무려 37개사무가 이양된다. 이외에도 심의가 보류된 사무만 20개에 달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은 대표적 사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을지대학교 보건산업안전학 갈원모 교수는 “지자체에서는 전문성 있는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데도 이런 밀실행정이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근로자 보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은 전형적 사례”라고 꼬집어 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지자체에 안전보건관련 사안을 일부 이전할 시 행정의 효율을 높일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비췄다.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산업의학과 이채관 교수는 “지방이전을 해서 효율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중앙청은 지방정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방정부가 산업안전보건을 잘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관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청이 없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도 산업안전을 관리·감독해 이원행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했다. 노동부 내부에서도 기능 일부를 지자체로 넘기는 법개정, 인력이동이 필요해 혼란이 예상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노조 고위 간부는 “노동부 내부에서도 산업안전을 관리·감독하는 인력 중 누가 지자체로 이동할 것이냐로 갈등 중”이라며 “노동부 산하기관인 지방노동청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지자체와 안전관리를 같이 분담하게 돼 산업안전이 이원화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 관계자는 “사업장 입장에서 보면 관리하는 머리가 두 개 생긴 꼴로 혼란이 있을 것이고 노동부가 법 개정을 할 때 지자체를 위해 곱게 개정을 하겠느냐”고 꼬집어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서 노동부는 산업안전과 관련된 사안을 지자체에 다수 뺏겨 울상이지만 이미 대통령 결재까지 난 상황에서 반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추진 이유를 취합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방분권촉진위원회는 여러차례 회의에 거쳐 이번 결정이 ILO규약에 위배되는지를 심의했다. 예컨대 핵심쟁점이던 ▲안전관리 대행기관 지정취소 기능과 ▲작업환경 측정기능은 심의보류된 상황이다. 하지만 왜 지자체에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넘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취합된 자료가 없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알고 있어 반대를 해왔던 사안”이라면서도 “이미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 노동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또한 지방분권촉진위원회 관계자는 “위원들이 장단점을 파악해 수차례 토의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며 “지방에 이양했을 때 확실히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해당 논의들을 취합해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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